[르포] 자폐인 직업재활 공동체 '새꿈터'

기사입력 2011-04-03 오후 3:49:22

지난 3월 30일 방송된 MBC TV <무릎팍 도사>에서 록밴드 '부활'의 김태원 씨가 자신의 11세 아들이 자폐성 장애인이라고 밝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안타까움을 샀다. 그는 "나는 지금도 내 아이와 대화하는 걸 꿈꾼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의 소원은 아들보다 단 하루 더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가족들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자폐성 장애에 대해서는 이미 일반인들에게 많이 소개돼 있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인 형진이, 수영선수 진호 등이 방송을 통해 자폐에 대한 인식을 넓혀줬다. 최근에는 <내 이름은 칸>이라는 영화에서도 자폐성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영화 <레인맨>에서처럼 자폐성 장애인이 특정한 뇌활동 분야에서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관심을 끌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감동' 스토리가 전부일까. 과연 우리 사회의 자폐성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유엔이 정한 '세계 자폐성 장애 인식의 날'(World Autism Awareness Day, 4월 2일)을 맞아 지적 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 16명이 생활하는 직업재활 공동체를 찾아가봤다. 지적 장애인들과 자폐성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직업 능력을 키워주는 곳이다. <편집자>



골짜기로 골짜기로


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탄현법흥리. 경의선을 타고 금촌역에 내려서도 버스를 타고 30분을 더 들어가서야 '새꿈터'라는 간판이 보였다. 근처에는 주유소공장 몇 곳이 눈에 띄었고 노인복지 시설도 한 곳 있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권택수(54) 원장을 만났다.

"찾아오시느라 힘들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머네요."
"여기가 세 번째 자리 잡은 집입니다. 원래 있던 곳에서 주민들 반대가 심해서 내가 살던 자택에서 아이들을 돌보다가, 거기도 주민들이 반대해서 여기로 왔습니다. 장애인 시설. 사람들이 싫어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새꿈터' 뒤편 언덕에는 무덤이 즐비했다.

"이런 시설은 골짜기로 자꾸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안타깝죠. 자폐인들은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적 생활 능력을 키워주는 학습이 중요한데, 자꾸 골짜기로 밀려나니 문화 환경에서 동 떨어져서 더 고립되는 거죠."

갇혀 사니 비만율이 높아

최근 장애인
비만율이 39.5%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정신 장애인의 비만율이 48.4%로 더 높다. 거의 집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신체장애와 달리 이들은 사회성이 부족해 홀로 거리에 나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도 많기도 하지만, 부모들이 정신 장애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2000년 등록된 자폐성 장애인이 1514명이었으나 2010년에는 1만4888명으로 10배 가량 뛰었다. 자폐인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장애를 숨겨왔기 때문이다. 권 원장은 "통계상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원장은 틈만 나면 원생들을 데리고 바깥
나들이를 한다. 12월에는 극장에서 <헬로우 고스트>, 1월에는 <황해>, <라스트 갓 파더>, <울지마 톤즈>, 2월에는 <평양성>, <조선 명탐정>, <글러브>를 봤고, 그 사이 창덕궁, 강화도, 포천, 철원 여행을 했으며, 샤갈 전시회도 관람했다. 체력 증진을 위해 감악산, 삼학산 등산도 했다. 장식장 안에는 마라톤 완주 기념 메달도 수두룩했다.

"와, 기자보다 영화도 많이 보고, 여행도 많이 다니네요."

권 원장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벽에 즐비하게 붙어 있는 사진들을 보여줬다. 태국, 일본, 중국해외여행 사진들이었다.

▲ 권택수 원장. ⓒ프레시안(김하영)

"사회성을 길러야 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바깥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외여행도 많이 갔습니다. 여행상품이 처음 나왔을 때나 비수기에 가끔 땡처리로 나오는 싼 여행상품들이 있거든요."

밖으로 밖으로

권 원장과 함께 생활관을 둘러봤다. 2명씩 생활하는 작은 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처음에는 침대를 놓았는데, 침대 위에서 너무 뛰니 남아나질 않더라고요. 위험하기도 하고."

모든 가구 모서리에는 보호대가 부착돼 있었다. 모서리에 머리를 찧는 원생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옷 장 안의 옷은 제법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생활교육의 첫 걸음이 자기 물건 정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처음 이 곳을 방문할 때는 방에 우두커니 모여 있는 장애인들을 상상했다. 방에는 한 명의 원생도 없었다.

"16명인데, 2명은 아직 학생이라 학교에 갔고요, 6명은 직장에 나갔습니다. 8명 있는데, 8명은 3층 작업장에 있습니다."

권 원장과 3층 작업장에 가니 원생 8명과 교사 1명, 공익근무요원 2명이 모여 있었다. 분주히 일을 하고 있었다. 색연필을 색깔별로 케이스에 넣는 작업이었다.

"직업 훈련입니다. 단순 반복 업무 정도는 학습을 통해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개개인 마다 잘 하는 일의 특성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적합한 일을 찾아주는 게 중요합니다." 

꽈리 고추에서 홍삼까지

원생 중에는 금고 제작회사에서 금고 열쇠 눈금에 색칠하는 일만 6년을 한 이도 있다고 한다. 월 15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구조조정 당해 현재는 인쇄 업종에 취업했다고 한다.

권 원장은 끊임없이 원생들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주고 있다. 원생인 박재형 씨(27세)는 현재 홍삼 제품을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박 씨가 포장에 재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부가가치 제품이 필요하기도 했다.

"원래 재형이를 위해서 꽈리고추 비닐하우스를 했었어요. 재형이가 손에 쥐는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전부 전자동으로 설비를 하고 재형이는 고추를 따게만 했죠. 그런데 잘 따는가 싶더니만 실증이 나면 고추를 다 뽑아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일을 찾다가 홍삼 제품 포장을 시켜봤는데, 지금은 잘 하고 있습니다."

직업 적성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전날 인근에 들어선 대형 의류 할인 매장의 한 식당면접을 갔는데, 한 원생이 계속 코를 후벼서 난처했다고 한다. 그래도 3명이 그 식당에서 3주 간의 실습을 하고 있다.

사회의 부정적 인식도 큰 장애물이다.

"한 번은 인근에 대기업 전자제품 공장에 면접을 갔는데, 1시간 면접하면서 아이 얘기는 안 듣고 임원이 50분을 떠들더라고요. 아이가 언어 능력이 없는데, 대화하려고는 안 하고 자기만 떠는거야."

▲ 원생들이 받은 마라톤 완주 메달들, 상장들, 직접 그린 그림들. ⓒ프레시안(김하영)

고등학교 졸업식이 초상날

<새꿈터>의 가장 큰 특징은 끊임없이 직업을 찾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제가 은평구에 있는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특수교사만 20년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식날은 초상날이었어요. 시청각 장애인 등 어디 몸이 불편한 아이들은 그래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데, 지적 장애인이나 자폐인들은 평생을 돌봐줘야 함에도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갈 곳이 없거든요."

장애인복지관과 주간보호센터가 있지만 들어가기도 쉽지 않고, 따라서 장애인 자녀가 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면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시기라고 한다.

"시설에 다녀도 낮에만 봐줄 뿐이지 부모님들이 계속 아이를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또래의 다른 자식들이 있으면 입시 준비를 하거나 대학에 다닐 때라 이 아이에게만 전념을 할 수도 없거든요. 돈 들어갈 데도 많고. 그리고 20년을 돌봐오며 지치기도 하고.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는 시기에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 합니다. 사실 자폐 장애인 가정은 결손 가정도 많습니다. 지쳐서 떠나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 사회 복지 시스템이 발전을 해왔지만 성인이 돼서도 '평생 돌봄'이 필요한 지적·자폐 장애인들을 위한 시스템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자폐 장애인 부모들의 소원은 단 한 가지다. "이 아이보다 단 하루라도 더 살게 해 주세요."

장애인 지원 제도에서도 소외된 자폐 장애인

"시청각 장애인, 마비 장애인 등 다른 신체 장애인들은 시위에 나가기도 하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의사 표현을 직접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의사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직접 말할 수 없거든요."

(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 김용직 회장이 <에이블뉴스>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자폐성 장애는 1999년에야 장애유형에 포함됐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겼지만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최근 장애인 단체와 야당들을 중심으로 '장애 등급'을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권 원장은 "등급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자폐 장애는 아이들마다 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걸 급수로 나눠서 장애연금이라고 줍니다. 그래봐야 9만 원, 7만 원, 5만 원 차이입니다. 그것도 부모 소득에 따라 안 주기도 하고 깎기도 합니다."

권 원장은 이런 현실에 교사 정년을 포기하고 학교를 나와 직접 성인 지적·자폐 장애인들을 돌보고 직업 훈련을 하는 공동체를 꾸렸다. 



빚만 3억

앞서 소개한 대로 쉽지 않았다. 처음 생활관을 만든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반상회에 불러내 "언제 나가냐"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집에 데려다 아이들을 돌봤는데, 자기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무덤 동산 앞까지 밀려왔다.

정부 지원도 시에서 지원하는 90만 원이 전부라고 한다. 시에서도 우수 사례로 꼽히고 일본재활 공동체에서 견학을 올 정도이지만, 퇴직금을 털어 새 생활관을 짓고 직업 적성을 찾아주기 위해 하우스를 짓고 각종 직업 설비를 들이느라 진 빚 3억 원 때문에 재정이 좋지 않아 법인 설립을 못 해 정부 지원을 받지 못 한다. 권 원장의 부인도 특수학교 교사인데 평생을 보낼 생각으로 지었던 집도 팔고 현재의 생활관에서 함께 지낸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회의 책임을 무시할 수 없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장애에 대한 무지와 더불어 때때로 터지는 장애인 시설 비리 사건의 영향도 크다.

"솔직히 어처구니없는 데도 많아요. 한 번은 겨울에 시설을 방문했더니 세탁기건물비닐하우스에 두고 아이들에게 손빨래를 시키고 있더라구요. 정부 지원 받고 후원도 받으려면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야 하거든요. 애들도 우두커니 있고 집도 지저분하고 그래야 사람들이 와서 청소해주고 그럽니다. 다 알죠. 그래서 난 그렇게 못 하겠더라고요. 애들도 가급적이면 바깥 활동하게 하고. 우리 집 깨끗하죠?(웃음)"

'새꿈터'에도 후원금후원물품을 보내오는 이들이 있다. 2010년 12~2011년 2월 사이에 80여 명이 후원금을 보냈고, 각종 생필품 후원물품도 왔다.

"후원품을 보내실 때 상하는 것은 좀 자제해주셨으면 해요. 어떤 건 넘쳐나서 상할 때 까지 못 먹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현금이 아니라 물품으로 보내주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돈으로 보내면 떼먹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 거죠."

사회의 '형식적' 지원도 문제라고 한다.

"내가 특수학교 교사할 땐데. 한 번은 장애인의 날이라고 우리 학교 아이들 전부 국회에 불렀더라고요. 여러 가지 문화행사도 하고 좋았죠. 그런데 점심 때가 되니까 아이들은 전부 국회도서관 바닥에 앉혀 도시락 주고, 의원들은 식당에 가서 밥 먹더라고요. 허. 참."

권 원장은 자존심이 강해보였다. 그는 "원래 여기 저기 손도 내밀고 그래야 하는데, 내가 그런 걸 잘 못해요"라면서 멋쩍게 웃었다.

무관심 속 '세계 자폐성 장애 인식의 날'

취재를 마치며 권 원장에게 "4월 2일이 유엔이 정한 '세계 자폐성 장애 인식의 날'(World Autism Awareness Day, WAAD)이라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허허허. 그래요? 몰랐네요"라고 웃었다.

권 원장이 몰랐을 법 하다. 2일 자폐 장애에 대한 보도를 한 중앙일간지는 <내일신문>이 실은 기고 외에는 한 곳도 없었다. 장애인 언론인 <에이블뉴스>가 (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 김용직 회장인터뷰했을 뿐. 그나마 <네이버-해피빈>이 '자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기획특집으로 다뤘다는 점이 위안이 될까. 언론들은 김태원 씨의 '고백'에는 귀를 기울이지만 정작 자폐성 장애에 대해서는 세심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오히려 여전히 '자폐증'이라는 용어를 무심코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는 한 칼럼에서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에 대해 "30년 장기 집권으로 심각한 정치적 자폐증에 걸린"이라고 표현했다. '자폐'라는 단어적 의미야 어쩔 수 없지만 '자폐증'이라는 단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가족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해피빈 공동기획특집 '자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자폐'(自閉) 말의 사전적인 의미 때문에 자폐인은 자기 세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세요? 자폐인은 스스로 마음을 닫거나 세상과의 어울림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함께 세상을 살고 있는 거랍니다. 그 세상은 우리보다 더 넓기도 하고, 때로는 좁기도 하답니다. 그것이 다르다고 해서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규정짓지 말아주세요. 자폐를 가진 사람들만의 독특한 생각이나 행동, 표현 방법들을 이해해주세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기, 자폐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참 . 개념 기사...

우리랑 조금 다를 뿐 우리랑 다를 바 없는 분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따뜻하게 대해야 할 듯..

 프레시앙되기

 
Posted by Paper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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